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옆 사람이 "근데 저 여자가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저도 솔직히 완벽하게 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절반밖에 이해되지 않는 영화입니다. 저는 미리 공부하고 들어갔는데도 놓친 장면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이 글에서는 영화를 더 깊이 즐기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배경지식과, 관객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장면들, 그리고 놀란이 결말에 숨겨둔 핵심 메시지를 정리했습니다.
배경지식 — 이것만 알고 가면 전혀 다른 영화
영화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합니다. 여기서 서사시(epic poem)란 영웅의 모험과 전쟁을 장대하게 노래한 장편 시 형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의 블록버스터 시나리오 같은 역할을 했던 고대 문학 장르입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트로이 전쟁입니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데려가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10년간 이어졌고,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마침내 끝납니다.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란 거대한 나무 말 안에 병사들을 숨겨 적의 성 안으로 잠입하는 전술로, 오늘날 컴퓨터 바이러스 이름에도 쓰일 만큼 전설적인 기만 전략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라는 작은 섬나라의 왕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금 기준으로 튀르키예에서 그리스까지 배로 열흘이면 갈 거리를 그는 10년 동안 헤맸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 키르케, 기억을 지우는 꽃을 먹이는 요정 칼립소까지. 제가 신화를 미리 읽고 들어갔는데도 "아, 이 장면이 그거였구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폴리스(polis)라는 개념을 알면 영화 속 정치 구도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폴리스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뜻하는데, 한 나라 안에 수십 개의 왕국이 각자의 왕을 두고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으로서 여러 왕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고, 오디세우스도 이타카의 왕으로서 그 연합군에 참여한 것입니다.
헷갈리는 장면 — 왜 이 영화는 순서가 이렇게 뒤죽박죽인가
영화관에서 제 옆자리 분이 개봉 첫날 상영 중간에 조용히 "이 사람이 누구야?"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타카 성에 구혼자 108명이 들끓는 장면인데, 관객은 오디세우스가 왜 20년째 집에 없는지 그 맥락을 모른 채로 이야기 속으로 던져집니다.
놀란 감독은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를 즐겨 사용하는 감독입니다. 비선형 서사란 이야기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현재·과거·회상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메멘토》, 《인터스텔라》에서도 이미 검증된 그의 특기인데, 이번에는 신화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그 복잡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기억을 잃은 채 흐릿한 눈으로 앉아 있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칼립소가 꽃을 먹여 기억을 지우고 7년째 함께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상태에서 과거의 전쟁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는 회상 신이 펼쳐지면서, 영화 전체의 타임라인이 조각조각 이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조가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오디세우스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관객에게 직접 체험시키려 한 장치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에서 자꾸 등장하는 젠데이아의 환영도 많은 분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부분입니다. 그 인물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환영으로, 오디세우스의 양심처럼 따라다닙니다. 전쟁 중 아테나 여신상의 목을 치는 장면과 젠데이아의 얼굴이 교차 편집되는 순간, 그것이 신을 모독한 죄를 시각화한 것임을 알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그 장면 하나를 이해했을 때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핵심 메시지 — 놀란이 결말에 숨겨둔 것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맴돈 대사가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왕비 페넬로페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때 살인과 방화와 약탈, 심지어 신까지 모독했고, 그 대가로 우리는 모든 걸 잃었다. 나의 세월과 나의 부하들을." 승리했는데 왜 모든 걸 잃었을까. 이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호메로스의 원작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귀환 후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그런데 놀란 감독은 결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모든 권력을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넘기고, 아내와 함께 서쪽 땅을 향해 떠납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서쪽은 망자의 땅, 저승을 향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즉, 그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이들, 자신 때문에 죽은 이들을 평생 추모하고 애도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이 결말이 단순히 "참회하면 용서받는다"는 메시지가 아닐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쪽이 더 와닿았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되찾았지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이 이후를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이 놀란이 던진 진짜 질문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더,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해 성으로 돌아왔을 때, 20년을 버텨온 그의 늙은 개가 거름 더미 위에서 숨만 쉬며 누워 있다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고 바로 숨을 거둡니다. 아내도, 아들도, 부하도 알아보지 못한 주인을 개만 알아봤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정말 눈물이 나왔습니다. 충성과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그 짧은 5초가 다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가멤논이 귀환 후 아내에게 암살당하는 장면도 단순히 "복수"가 아닙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로 출전하기 위해 바람을 빌어야 했고, 신탁의 말대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내에게 "아킬레우스에게 시집 보낸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이처럼 지도자의 오만과 기만이 가족의 파멸로 돌아오는 구조를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마르티아란 영웅의 결정적 결함 또는 비극적 실수를 뜻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으로(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아가멤논의 죽음은 그 고전적 결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이 영화 보기 전에 신화 공부 꼭 해야 하나요?
A. 필수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체감 만족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최소한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 중 몇 가지 에피소드만 파악해도 헷갈리는 장면이 크게 줄어듭니다. 영화를 이미 본 분이라면 보고 나서 복습용으로 신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Q. 영화에서 젠데이아 역할이 정확히 뭔가요?
A. 젠데이아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환영으로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전쟁 중 아테나 여신상의 목을 치는 신성 모독을 저질렀고, 그 죄의식이 환영의 형태로 그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신화와 배경지식 없이 보면 "저 여자가 갑자기 왜 나오지?" 싶을 수 있는 장면이지만, 알고 보면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편집 중 하나입니다.
Q. 아가멤논(아가론)은 왜 자기 아내한테 죽은 건가요?
A.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 출전 전, 바람이 불지 않자 신탁을 받고 딸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는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고 거짓말을 해서 딸을 데려갔습니다. 아내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10년 전쟁 내내 복수의 칼을 갈다가 개선장군처럼 돌아온 남편을 암살합니다.
Q. 오디세우스가 결말에 서쪽으로 떠나는 이유가 뭔가요?
A.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서쪽, 즉 해가 지는 방향은 망자들이 가는 저승의 방향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고 아내와 함께 서쪽으로 떠나는데, 이는 자신의 손으로 죽이거나 자신 때문에 죽은 수많은 영혼들을 남은 생애 동안 추모하고 제를 올리겠다는 결심을 상징합니다. 원작과 다른 이 결말이 놀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Q. 칼립소 섬에서 오디세우스가 기억을 잃은 이유는 뭔가요?
A.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분)가 오디세우스에게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꽃을 먹였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칼립소가 그를 평생 자신의 섬에 붙잡아 두기 위해 과거 기억을 지우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무려 7년간 이 섬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았고, 칼립소가 스스로 풀어주면서 비로소 귀환 여정이 재개됩니다.
결론
《오디세이》는 배경지식 없이 봐도 영상미 하나만으로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신화를 알고 들어가면, 그리고 헷갈렸던 장면들의 의미를 하나씩 이해하고 나면, 이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보고 나서 원작 『오디세이아』가 궁금해졌고, 실제로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가 이렇게 현재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트로이 전쟁의 발단과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 개요 정도만 숙지하고 들어가시길 권합니다. 이미 보셨다면 이 글에서 짚은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한 번 더 보시면 분명 다른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